(20 April 1889 – 30 April 1945)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긁어모아서 뒤죽박죽이다.
--------------------------------------------------------------------------------------------------------------------------------------------------------------------------------------------------------------------------------------------------------------Intro.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사람이다.
36세에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포기했으며,
43세에 총통이 되기 전까지 독일인이 아니었다.
43세에 총통이 되기 전까지 독일인이 아니었다.
이 집은 오스트리아에 위치한 히틀러 생가
현재 히틀러의 생가라는 표시가 없는 대신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는 파시즘이 없길. 수백만의 죽음이 경고한다'
는 글귀가 새겨진 기념석이 있다.
히틀러는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히틀러는 4살 때 강물에 빠져 죽을뻔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한 성직자가 그를 구해냈다.
현재 히틀러의 생가라는 표시가 없는 대신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는 파시즘이 없길. 수백만의 죽음이 경고한다'
는 글귀가 새겨진 기념석이 있다.
히틀러는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히틀러는 4살 때 강물에 빠져 죽을뻔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한 성직자가 그를 구해냈다.
이후 1차 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한 히틀러는
전장에서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맞게 되는데, 영국군에 의해 목숨을 구했다.
전장에서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맞게 되는데, 영국군에 의해 목숨을 구했다.
히틀러의 첫사랑은 유태인 소녀였다.
스테파니 아이작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사랑했던
16세의 히틀러. 하지만 너무 소심해 차마 그녀에게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말 대신 조악한 시로 마음을 표현했다고.
스테파니 아이작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사랑했던
16세의 히틀러. 하지만 너무 소심해 차마 그녀에게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말 대신 조악한 시로 마음을 표현했다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히틀러는 미대 지망생이었다.
히틀러는 비엔나 미대에 두 번이나 지원하지만, 모두 낙방한다.
히틀러는 주로 건물그림을 그렸는데, 그때당시 화풍이
야수파, 인상주의,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였다.
여담
그때 당시 합격한 미대생은 에곤 실레 였다.
히틀러는 비엔나 미대에 두 번이나 지원하지만, 모두 낙방한다.
히틀러는 주로 건물그림을 그렸는데, 그때당시 화풍이
야수파, 인상주의,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였다.
여담
그때 당시 합격한 미대생은 에곤 실레 였다.
히틀러는 월트 디즈니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그렸다나?
난쟁이를 그렸는데 이니셜 A.H.가 있다.
난쟁이를 그렸는데 이니셜 A.H.가 있다.
히틀러는 군 면제였다.
그는 1913년에 오스트리아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뮌헨으로 이주했다.
다음 해에 체포되어 신검을 받게 되었으나,
신체 허약을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는 1913년에 오스트리아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뮌헨으로 이주했다.
다음 해에 체포되어 신검을 받게 되었으나,
신체 허약을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랬던 히틀러가 자원입대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독일군에 자원입대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독일군에 자원입대했다.
히틀러는 야행성이었다.
히틀러는 보통 새벽 4~5시까지 업무를 보다가, 메이드에게 침실을
확인하게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주로 아침 11시까지 잠을 잤다고.
여담
총통이 되기전, 바이마르 공화국의 듣보잡일때,
저녘시간 선술집에서 웅변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재밌는 볼거리였다고 한다.
영화 "그가 돌아왔다" 에서도
히틀러는 보통 새벽 4~5시까지 업무를 보다가, 메이드에게 침실을
확인하게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주로 아침 11시까지 잠을 잤다고.
여담
총통이 되기전, 바이마르 공화국의 듣보잡일때,
저녘시간 선술집에서 웅변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재밌는 볼거리였다고 한다.
영화 "그가 돌아왔다" 에서도
히틀러를 처음 접한, 생존한유대인들은 다들 처음에 그의 말에 웃었다고 한다.
여담
한국방송 "대화의 희열2" 에서 독일에서 책 낭독회 한게 있는데
저녁 시간때,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유가 그 시간때 TV프로그램이 노잼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유머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책은 독일 유머집과 영국의 요리책이다. (빙 크로스비)"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때는 어땠을까?
어쩌면 히틀러는 그 시간때를 노렸을지도...?
여담
한국방송 "대화의 희열2" 에서 독일에서 책 낭독회 한게 있는데
저녁 시간때,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유가 그 시간때 TV프로그램이 노잼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유머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책은 독일 유머집과 영국의 요리책이다. (빙 크로스비)"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때는 어땠을까?
어쩌면 히틀러는 그 시간때를 노렸을지도...?
히틀러는 미술가를 꿈꾸었고
괴벨스는 작가를 꿈꾸었다.
--------------------------------------------------------------------------------------------------------------------------------------------------------------------------------------------------------------------------------------------------------------Reich
히틀러는 섹스 인형?!을 나치군에 제공했다.
1940년 프랑스에 입성한 나치군이 무분별한 매춘으로 매독에 걸리자,
히틀러는 군장에 챙길 수 있는 사이즈의 섹스돌을 생산했다.
실리콘 합성 고무 소재였다고. (리얼돌 또는 오나홀?)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다.
동물 해부 장면을 목격한 뒤,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전쟁이 끝나면, 독일의 고기 소비를 줄일 계획이었다.
여담
1933년 11월 히틀러는 세계 최초로 동물 보호법을 제정했다.
전세계 모든 동물보호법의 기본이 될 정도로 가장 현대적이고 구체적인 동물 보호법으로 손꼽히고 있다.
주요 내용은 돌물에 대한 생체해부 금지, 동물학대 금지 등 이다.
여담
히틀러가 그나마 마음을 여는 상대는 사람이 아닌 개였다.
1941년에 선물받은 저먼셰퍼드, 블론디 (Blondi)다.
개와는 반대로 고양이를 엄청 싫어했다.
여담
실제로 히틀러는 군복무 중 애지중지하던 푹슬이라는 개를 도둑맞고 맛이 갔었다
여담
여담
1936년에 히틀러는 미국에서 악어도 들여왔다. 이름은 새턴 (Saturn)
이 악어는 독일의 멸망, 소련의 멸망을 지켜보고
2020년 5월 22일 사망했다. (오래도 살았다.)
여담
1940년 히틀러는 유색인종과 장애인 전시에 대한 모든것을 금지했다.
마지막 인간동물원은 1958년 벨기예 브뤼셀에서 개최되었다.
히틀러는 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나마 정부인에 가까웠던 에바 브라운조차 적정선을 그어놓고 지내다가
벙커에서 같이 자살하기 직전에야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을 정도였다.
여담
여자한테 이런데 남자들한테 어땠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히틀러의 추종자 발터 부흐(Walter Buch)가 1928년에 보낸 편지에
"그는 인간을 경멸한다" 라고 적혀있다.
여자한테 이런데 남자들한테 어땠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히틀러의 추종자 발터 부흐(Walter Buch)가 1928년에 보낸 편지에
"그는 인간을 경멸한다" 라고 적혀있다.
히틀러는 단 걸 좋아했다.
매일 달달한 간식을 엄청나게 먹었다. 하루에 그가 먹은 초콜릿은 거의 1kg.
그 결과, 히틀러는 충치로 고생을 했다.
매일 달달한 간식을 엄청나게 먹었다. 하루에 그가 먹은 초콜릿은 거의 1kg.
그 결과, 히틀러는 충치로 고생을 했다.
여담
히틀러의 치과의사 후고 블라슈케 (Hugo Blaschke)는
낮잠을 자는틈을 타 충치를 치료한적이 있다.
히틀러가 벙커에서 자살했을때, 그의 시체임을 판명한것도 그다.
충치 하니까 생각나는게 있는데,
조선의 왕중 연산군이 성격이 지랄맞은것도 충치도 한몪했다는 설이 있다.
여담
달달한것을 좋아하는 히틀러에 의해 환타가 생겨났지 않았을까?
미국의 참전 전, 독일에도 코카콜라가 있었다.
그러나 1941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콜라 원액의 공급은 당연히 중단된다.
독일은 콜라의대체음료 환타를 개발했다.
낮잠을 자는틈을 타 충치를 치료한적이 있다.
히틀러가 벙커에서 자살했을때, 그의 시체임을 판명한것도 그다.
충치 하니까 생각나는게 있는데,
조선의 왕중 연산군이 성격이 지랄맞은것도 충치도 한몪했다는 설이 있다.
여담
달달한것을 좋아하는 히틀러에 의해 환타가 생겨났지 않았을까?
미국의 참전 전, 독일에도 코카콜라가 있었다.
그러나 1941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콜라 원액의 공급은 당연히 중단된다.
독일은 콜라의대체음료 환타를 개발했다.
주치의 테오도어 모렐(Theodor Morell) 이 히틀러를 약물중독자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위장이 안 좋았다.
그는 심각한 위장병을 앓아서, 몸 속에 가스가 많이 찼다.
그는 심각한 위장병을 앓아서, 몸 속에 가스가 많이 찼다.
입냄새도 심각했다고한다.
여담
히틀러는 뿡뿡이 였다.
히틀러는 자신의 신격화&우상화를 위해 방귀가 안나오는 약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먹을수록 방귀가 나오고 냄새는 지독해졌다고 한다.
여담
히틀러는 자신의 신격화&우상화를 위해 방귀가 안나오는 약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먹을수록 방귀가 나오고 냄새는 지독해졌다고 한다.
여담
필로폰과 모르핀 등 74종류나 되는 약물을 혼합해 정기적으로 투약했다.
성욕 증진을 위해 황소 고환에서 추출한 정액을 맞았다는 추측도 있다.
성욕 증진을 위해 황소 고환에서 추출한 정액을 맞았다는 추측도 있다.
몇몇 학자들은 히틀러가 그 약의 성분들중 뭔가에 중독되 미치광이 전쟁광이 되는데 한몪했다고 본다.
히틀러는 담배를 싫어했다.
그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금연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지인 중에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금시계를 상으로 주기도 했다.
히틀러는 담배를 싫어했다.
그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금연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지인 중에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금시계를 상으로 주기도 했다.
히틀러의 고환이 하나였다는 추측이 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신체검사를 받을 때부터 없었다는 설,
다른 하나는 1차 대전 중 허벅지를 다치며 고환 한 쪽을 잃었다는 설이다.
여기서 나아가, 히틀러가 여자였다는 낭설도 있었다.
러시아가 보관하고 있는 히틀러의 두개골이
40대 미만 여성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 때문이다.
여담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신체검사를 받을 때부터 없었다는 설,
다른 하나는 1차 대전 중 허벅지를 다치며 고환 한 쪽을 잃었다는 설이다.
여기서 나아가, 히틀러가 여자였다는 낭설도 있었다.
러시아가 보관하고 있는 히틀러의 두개골이
40대 미만 여성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 때문이다.
여담
히틀러는 강제로 여자가 될 뻔했다.
전쟁광 히틀러의 야욕을 없애기 위해,
영국 스파이가 히틀러 음식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몰래 넣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전쟁광 히틀러의 야욕을 없애기 위해,
영국 스파이가 히틀러 음식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몰래 넣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과거의 히틀러는 유대인과 친하게 지냈다.
젊은시절 유대인하고 잘 지냈다. 군대 가서도 그랬다.
자랑이던 철십자 훈장(EK)도 유대인장교가 밀어준 덕분에 받았다고 한다.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괴벨스 (Goebbels)는 유대인 엘제 얀케 (Else Janke)와 결혼까지 고민했었다.
힘러 (Heinrich Himmler) 는 유대인동급생과 잘 지냈다.
반제회의 (Wannsee Konferenz) 참석자 아이히만 (Adolf Eichmann) 도 유대인 친구가 많았다.
히틀러는 영화를 찍었다.
제목은 의지의 승리, 감독은 레니 리펜슈탈
괴벨스 (Goebbels)는 유대인 엘제 얀케 (Else Janke)와 결혼까지 고민했었다.
힘러 (Heinrich Himmler) 는 유대인동급생과 잘 지냈다.
반제회의 (Wannsee Konferenz) 참석자 아이히만 (Adolf Eichmann) 도 유대인 친구가 많았다.
히틀러는 영화를 찍었다.
제목은 의지의 승리, 감독은 레니 리펜슈탈
배경은 1934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레니 리펜슈탈은 죽기직전 "히틀러를 만난 건 내 일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레니 리펜슈탈은 죽기직전 "히틀러를 만난 건 내 일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
히틀러가 당시 1940년에 독일에서 상영 금지시켰는데,
정작 본인은 포르투칼을 통해 이 영화를 입수해서 무려 2번이나 연속해서 봤다는 말이 있다.
히틀러는 책(자서전)도 썼다.
나중에 총통이 된 히틀러는 "나의 투쟁"을 쓴 것을 부끄러워 했다.
무솔리니도 읽고 비웃었다.
내용은 미국의 헨리 포드의 유대인을 멸시하는 "국제 유대인"이란 책을 그대로 배꼈다.
히틀러가 당시 1940년에 독일에서 상영 금지시켰는데,
정작 본인은 포르투칼을 통해 이 영화를 입수해서 무려 2번이나 연속해서 봤다는 말이 있다.
히틀러는 책(자서전)도 썼다.
나중에 총통이 된 히틀러는 "나의 투쟁"을 쓴 것을 부끄러워 했다.
무솔리니도 읽고 비웃었다.
내용은 미국의 헨리 포드의 유대인을 멸시하는 "국제 유대인"이란 책을 그대로 배꼈다.
1934년, 히틀러는 무솔리니에게 초대받아 이탈리아로 가게 됐는데,
히틀러는 노란색 비옷과 모자, 갈색 줄무늬 바지에 에나멜 부츠를 신고 로마로 갔는데,
무솔리니는 허리춤에 꽂은 은빛 단검과 직접 디자인한 군복,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 군화에 멋들어진 모자에등등 모든 면모를 비교해봐도 도저히 비교가 불가했다.
무솔리니는 허리춤에 꽂은 은빛 단검과 직접 디자인한 군복,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 군화에 멋들어진 모자에등등 모든 면모를 비교해봐도 도저히 비교가 불가했다.
그 이후로 히틀러는 다시는 이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패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무솔리니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붙해 군복을 위주로 차려입게 되었다.
그때의 비교당한게 한에 서렸는지 히틀러는 군복을 만들라고 지시했을 때 그 무엇보다 멋을 우선하라고 명령도 내렸기까지 했음.
그리고 멋을 우선시해서 만들어진 군복을 입고 소련으로 쳐들어간 독일군은 궤멸했다.
히틀러는 1935년에 5월에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다.
금강산도 직접 다녀보고 경치좋은 곳이라고 감상도 남긴 적이 있을 정도.
그리고 1936년 10월에 조선에 물난리(水災)가 났을 때에 이재민 지원금(金一封)도 보낸적이 있었다고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만 싫어했다. (아무튼 인종차별주의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독일의 멀리뛰기 선수 루츠 롱이 은메달, 미국의 흑인 제시 오웬스 선수가 금메달을 수여 받을때, 오웬스와 팔짱을 끼고 달리며 수십만 관중에게 인사를 했다.
히틀러는 지나가던 오언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오언스는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3제국을 패망으로 만든 장본인은 히틀러 자신이다.
바이마르 공화국때, 무명으로 활동했던 시절
에리크 얀 하누센 (헤르만 슈타인슈나이더) 이라는 점성술사가 그의 미래를 알아보고, 측근이 된다.
인도에는 히틀러 브랜드가 있다.
히틀러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맞다. 1939년 스웨덴 변호사 E.G.C. 브란트는
국제 사회의 유대를 고취하고 군비 축소를 끌어내고자
히틀러를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나중에 '웃자고 한 일'이라며 후보 추천을 철회했다.
놀랍게도 맞다. 1939년 스웨덴 변호사 E.G.C. 브란트는
국제 사회의 유대를 고취하고 군비 축소를 끌어내고자
히틀러를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나중에 '웃자고 한 일'이라며 후보 추천을 철회했다.
히틀러는 1935년에 5월에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다.
금강산도 직접 다녀보고 경치좋은 곳이라고 감상도 남긴 적이 있을 정도.
그리고 1936년 10월에 조선에 물난리(水災)가 났을 때에 이재민 지원금(金一封)도 보낸적이 있었다고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만 싫어했다. (아무튼 인종차별주의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독일의 멀리뛰기 선수 루츠 롱이 은메달, 미국의 흑인 제시 오웬스 선수가 금메달을 수여 받을때, 오웬스와 팔짱을 끼고 달리며 수십만 관중에게 인사를 했다.
히틀러는 지나가던 오언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오언스는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오히려 자신을 냉대한건 오히려 루즈벨트였다고 한다.
한국 사람중 유일하게 히틀러를 본 사람, 손기정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준 것도 히틀러 이다.
한국 사람중 유일하게 히틀러를 본 사람, 손기정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준 것도 히틀러 이다.
여담
콘스탄체 만체아를리
히틀러는 어머니의 주치의 브로호 박사에 대한 강력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30년후 총통이 되서는 유대인인데도 어떠한 보복이나 공격을 안받는건 물론
병원까지 운영하고 브로호를 건드리는자는 내가 가만 안둔다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이후 브로호 박사는 히틀러의 지원으로 1940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히틀러가 포르셰 박사한테
냅킨 체코 타트라 T97 감명 받아 카피
자동차 지크프리트 마르쿠스 나르쿠스
쉬클그루버
히틀러만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언싱커블 작전
나폴레옹 참배
나폴레옹 참배
프리드리히 대제
3제국을 패망으로 만든 장본인은 히틀러 자신이다.
바이마르 공화국때, 무명으로 활동했던 시절
에리크 얀 하누센 (헤르만 슈타인슈나이더) 이라는 점성술사가 그의 미래를 알아보고, 측근이 된다.
하지만, 총통이 된 이후 전쟁을 하면 3제국은 반드시 패망한다는 예언을 하는데,
나중에 변사체로 발견....
나중에 변사체로 발견....
카를 하우스호퍼라는 인물이 있다. 이 사람도 히틀러를 알아보고 최측근 심복이된다.
불교에 심취한 그가 하켄크로이츠를 디자인한것도 그다.
그의 아들이 나치저항세력에 가담해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사형당한다.
아버지로서 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사형당하자 하우스호퍼는 히틀러는 떠난다.
영국첩보부가 내분을 유도하기위해
붉은 말 작전이란것을 만들었다.
가상의 반나치 세력이란것을 만든것인데
히틀러는 당연히 믿었다.
작전명 발키리 이후 히틀러는 불신이 극에 달했다.
히틀러패러디로 유명한 몰락에서 히틀러의 대사중에
스탈린처럼 고급장교를 죽였다고 말했다.
--------------------------------------------------------------------------------------------------------------------------------------------------------------------------------------------------------------------------------------------------------------After WW2
붉은 말 작전이란것을 만들었다.
가상의 반나치 세력이란것을 만든것인데
히틀러는 당연히 믿었다.
작전명 발키리 이후 히틀러는 불신이 극에 달했다.
히틀러패러디로 유명한 몰락에서 히틀러의 대사중에
스탈린처럼 고급장교를 죽였다고 말했다.
--------------------------------------------------------------------------------------------------------------------------------------------------------------------------------------------------------------------------------------------------------------After WW2
히틀러 모에화 놀랍게도 존재한다.
새상에 맙소사.
남서 아프리카 나미비아 지방선거거에서
아돌프 히틀러(동명이인) 시의회 의원 선출 된적이 있다.
인도에는 히틀러 브랜드가 있다.
아무래도 식민지배, 통치한 영국보다 나치가 좋은가 보다.
클라크 게이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중 한명, 꼴초
군인 출신으로 WW2 참전 소령전역
히틀러가 광팬 중 한명으로서
생포 해오는 사람한테는 거금을 준다고 했다.
https://www.hitler-archive.com/index.php?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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